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건
기억과 망각을 조금씩 잊으며 지우며 내려놓으며
사는 것인지도 모른다.
그래서 이 세상 떠나는 날에는 추억을 내 가슴에 묻으며
모든 것을 훌훌 털고 가야한다는 것을.
큰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강은 말없는 '흐름'으로 알려주고 있다.
내 삶의 친절한 안내자는 길이었다.
내가 어디로 가야하고 왜 가야하는지를 몰라
방황할 때 귓속말로 대답해준다.
네가 가고 싶은 길을 가라고......
살면서 아픔과 부딪치고 고통과 씨름하며
더 많이 흔들리고 방황해야 힘든 청춘은 지나간다.
흔들리는 어제의 발자국이 아픈 오늘의 나를 있게 했듯이
아픈 오늘의 발자국을 잘 치유하면 중심잡은 내일의 나를 만난다.
타임캡슐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보면
초등학교 운동장을 뛰어다니던 호기심 많던 8살 꼬마 소녀가
수십 년이 흐른 지금 시인이 되었다.
한 때는 나에게도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만큼
고단한 삶을 보냈던 시간이 있었다.
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내가 하고싶은 일을 찾아 꿈을 이루기 위해
쉬지않고 길 위에서 비와 바람을 맞으며 싸웠다.
죽기 아니면 살기로 버틴 그 때 그 시절이 없었더라면
현재의 나는 없을테니까.
힘들 때마다 찾아간 자연,
나를 위해 내어주던 따뜻한 위로와
나를 위해 비추던 따뜻한 응원을 잊을 수가 없다.
그 때 생을 막아선 혹독한 시련과 욕망을
가슴으로 끌어 안지 않았더라면
키보드 앞에서 누군가 씹다가 버린 상처난 언어의 조각을
영혼을 위로하는 언어를 조합하는 시인이 되지도 못했을 것이고
따사로운 일상의 고마움과 그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
기분좋은 오후의 햇살을 사랑으로 기쁨으로 만나지 못하리라.
그 옛날 빈 몸으로 찾아간 가난한 시인에게
편안히 쉬어가라며 자신을 내어준 동백숲의 배려가 없었다면
누군가를 위해 불끝에 데이면서도
불쏘시게를 놓지 않으며 살아가는 작가는 되지 못했을테니까.
- 김정한 잘있었나요 내인생 중에서,